가셔브룸 I은 세계 11위 고봉이자 K2와 함께 카라코람을 대표하는 히말라야 산군입니다. 장엄한 빙하 지대, 위험한 등반 루트, 생태와 문화의 조화를 모두 갖춘 산을 소개합니다.
1. 가셔브룸 I은 어떤 산인가요?
가셔브룸 I(Gasherbrum I)은 해발 8,080m로 세계에서 11번째로 높은 산이며, 파키스탄 북동부 카라코람 산맥에 속한 8000m급 고봉입니다. 브로드피크, 가셔브룸 II, K2 등과 함께 카라코람 고산군의 핵심을 이루는 산으로, ‘숨겨진 거인’, 또는 ‘은둔의 히말라야’로 불리기도 합니다.
이 산은 1909년 이탈리아 탐험가 듀크 오브 아브루치(Duke of the Abruzzi)에 의해 처음 기록되었으며, 당시에는 K5라는 코드네임으로 불렸습니다. 이후 1934년, 영국 탐험가 콘웨이에 의해 'Gasherbrum'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일반적으로 '가셔브룸'은 ‘빛나는 벽(Shining Wall)’이라는 의미로 알려져 있으나, 티베트어로는 ‘아름다운 산(beautiful mountain)’이라는 뜻을 가진 것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가셔브룸 I은 1958년 미국 원정대에 의해 최초 등정되었으며, 등반 역사상 최초의 미국 8000m급 등정이라는 중요한 기록도 남겼습니다. 현재는 상업적 등반보다는 순수 알피니스트들이 찾는 산으로, 조용하고 깊은 산행을 원하는 이들에게 이상적인 고봉입니다.
2. 가셔브룸 I의 등반 난이도와 루트 소개
가셔브룸 I은 K2나 낭가파르밧처럼 사망률이 높은 산은 아니지만, 결코 만만한 산이 아닙니다. 빙설 지형, 날씨 변화, 고산증 리스크 등 고산 등반의 주요 위험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으며, 정상 직전의 ‘히든 피크 구간’은 이름처럼 마지막까지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산의 특성을 잘 보여줍니다.
일반적인 등반 루트는 다음과 같습니다:
- Base Camp (5,000m) – 콘코디아를 경유해 접근
- Camp 1 (5,900m) – 빙하 구간, 크레바스 주의
- Camp 2 (6,400m) – 얼음벽과 바위 구간
- Camp 3 (7,200m) – 정상 접근 루트 분기점
- Summit (8,080m) – 좁고 노출된 능선을 따라 최종 등정
가셔브룸 I의 등반은 기술적으로는 브로드피크보다 다소 어렵지만, K2보다는 수월한 편으로 평가됩니다. 하지만 정상부는 매우 좁고 노출된 구간이 많아, 강풍 시 큰 위험을 동반합니다. 특히 날씨가 급변할 경우 하산 중 조난 사례가 종종 발생하며, 이 때문에 등반 시기는 반드시 예측 가능한 기상창(Window)을 확보해야 합니다.
최근에는 산소통 없이 오르는 ‘순수 등반’이 늘고 있으며, 알파인 스타일의 빠른 등정도 도전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등반은 전통적 캠프 구축 방식에 기반해 진행됩니다.
3. 가셔브룸 지역 트레킹과 베이스캠프 접근
가셔브룸 I은 등반뿐 아니라 트레킹 목적지로도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K2, 브로드피크, 가셔브룸 시리즈를 아우르는 콘코디아(Concordia)는 세계적인 고산 조망 지대로, '지구에서 가장 위대한 자연극장'이라 불립니다.
트레킹 경로는 보통 다음과 같습니다:
- 스카르두(Skardu) → 아스콜레(Askole)까지 차량 이동
- 이후 파이유(Paiyu), 우르두카스(Urdokas), 고로 II(Goro II)를 거쳐
- 콘코디아(Concordia, 4,600m) 도달
- 가셔브룸 베이스캠프까지 추가로 1~2일
이 지역의 트레킹은 장거리와 고산 지형, 빙하 지대를 포함하기 때문에 일반 트레킹보다는 고난이도에 해당합니다. 특히 발토로 빙하는 수십 km의 얼음지대를 직접 걷는 일정이 포함되어, 철저한 사전 준비와 가이드 동행이 필수입니다.
트레킹 중에는 K2, 브로드피크, 가셔브룸 I·II·III 등 세계적인 8000m급 봉우리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장면을 경험할 수 있어, 고산 트레커들에게는 그야말로 ‘성지순례’와도 같은 코스입니다.
4. 가셔브룸 I의 생태계와 문화적 배경
가셔브룸 I이 속한 센트럴 카라코람 국립공원(CKNP)은 파키스탄 최대의 보호구역으로, 10여 개의 7000~8000m급 산들이 모여 있는 고산 생태계의 중심입니다. 이 지역은 빙하, 만년설, 초고산 초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다양한 멸종위기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습니다.
주요 서식 종은 눈표범, 히말라야 타르, 마르코폴로양, 머스디어, 고산 독수리 등이며, 해발 5,000m 이상에서도 생물이 서식할 정도로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지역입니다. 최근에는 기후변화로 인한 빙하 후퇴가 눈에 띄게 가속화되고 있어, 학술적·환경적 가치도 매우 높습니다.
이 지역에 거주하는 발티(Balti)족은 티베트계 이슬람 문화권에 속하며, 자연을 신성시하고 조화를 중시하는 전통을 유지해왔습니다. 트레킹이나 등반 시에도 그들의 환대와 호의, 풍부한 고산 지식, 철학적 삶의 태도는 여행자들에게 큰 인상을 남깁니다.
현지에서는 생태관광을 적극 장려하고 있으며, 환경 보호 캠페인, 쓰레기 되가져가기 정책, 재사용 가능한 로지 운영 등이 엄격하게 시행되고 있습니다. 남기지 말고, 오롯이 기억만 가져가라(Leave only footprints)는 이 지역의 신조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결론: 가셔브룸 I, 화려하지 않아 더 위대한 산
가셔브룸 I은 K2처럼 유명하지도, 에베레스트처럼 많은 이들이 오르지도 않았지만, 진정한 등반가와 자연애호가들의 산입니다. 극적인 자연, 깊은 철학, 절제된 아름다움을 품은 이 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교감과 존중의 대상으로 기억될 만한 거인입니다.
이제, 당신만의 여정을 시작해보세요. 그 끝에 ‘가셔브룸 I’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을지도 모릅니다.